아름다운 이야기 간증

스펙·명예욕으로 들끓던 삶… 제자 양육하며 평안 찾아

저는 예수님을 믿기 전 좋은 학벌과 대기업, 명예욕에 갇혀 살았습니다. 지기 싫어하며 1등이 아니면 견딜 수 없는 성격으로, 스스로를 많이 괴롭혔습니다. 유일한 만족은 1등 성적표로 위안 삼는 것이었습니다.

계명대 입학 후 항상 1등을 했지만 2013년 성균관대 대학원에 들어가서는 더 치열한 경쟁으로 제 삶은 점점 더 어두워져 갔습니다. 원하던 대학원, 원하던 공부, 원하던 삶이었지만 비교의식만 커질 뿐 삶의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3년 3월 학교 연구실에서 ‘해피브릿지’라는 광고문을 보게 됐고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회 언니를 통해 모임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따뜻한 만남과 저와는 다른 삶의 목적들을 갖고 사는 교회분들을 보고 의아해하기도 했지만, 그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고 좋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예수님의 사랑을 들으며 제 마음도 차츰 열렸습니다. 그해 열린 행복치유수양회를 통해 저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삶의 목적을 발견하고 더이상 비교의식과 명예욕으로 삶을 채우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저의 꿈은 영혼연구원입니다. 제자훈련을 통해 저의 삶은 변화됐고 세상 욕망으로 저를 괴롭히며 살아왔던 인생이 지금은 세상연구원이 아닌 영혼연구원이 돼 천국 소망을 갖고 달려가는 인생이 됐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하나님의 사랑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던 저에게 셀그룹 제자양육으로 복음이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복음을 선포하면서 양육자인 내가 먼저 삶과 인격에 복음이 꽂히게 되었습니다. 전하면 전할수록 더욱 담대함을 얻게 됐고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 있게 전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셀그룹 제자양육을 통해 많은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오고 있음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늘 혼잣말과 부정적인 말로 자신을 괴롭히고 대인관계가 되지 않던 한 자매와 양육을 시작했습니다.

늘 불안해하고 사람들이 많은 곳을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을 반드시 믿고 구원의 길을 걷게 해줘야겠다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셀그룹 제자양육을 하며 예수님을 소개해 주고, 만날 때마다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마음을 다해 알려줬습니다.

결국, 이 자매는 예수님을 영접했고 수십 년간 삶을 괴롭히던 어둠의 영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떠나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 자녀의 삶을 확신하며 사람들 많은 곳을 당당하게 다니는 것을 보고 자신도 기적이라 말합니다.

제자양육을 하며 복음을 전하다 보면 이렇게 귀신에 묶인 자, 공황장애, 불면증 등 갖가지 정신질환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사단의 종노릇을 하던 인생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 자녀로 신분의 변화가 일어날 때 천국의 기쁨을 누리는 것을 보면 이 양육 시간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제자양육 1과 제목처럼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인생인가’에 대한 질문이 남녀노소 누구나 있음을 봅니다. 1시간 남짓 보내는 이 시간이지만 복음을 전할 때 인생의 답을 발견하고 새로운 축복의 인생으로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면 이 삶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어디서 누구를 만나게 하실지 모르기에 택시를 타거나 친구들을 만나거나 고향에 가거나 어디를 가든지 항상 양육 교재를 갖고 다닙니다. 책이 펼쳐지는 그곳이 이 시대의 초대교회요, 삶의 처소에서 수많은 교회가 개척되는 실제적 현장이요, 천국임을 느낍니다.

셀그룹 제자양육은 주님이 이 땅에 하신 지상대명령,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마지막 유언을 이루어드리는 영적 무기임을 확신합니다.

김강미 청년 

전도 문제로 아내와 심한 갈등… 셀 제자양육 통해 회복

저는 38세 결혼 7년차로 두 살배기 아이의 아빠입니다. 아내는 초등학생 시절 교회를 다녔지만, 그 후로 떠나 있다가 저를 만나고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아내와 저는 신앙이 성장할 수 있는 교회를 찾기 위해 1년이 넘는 시간을 기도했고 2015년 예수마을셀교회를 만났습니다.

교회의 첫인상은 특별했습니다. 사람들이 밝고 다들 목사님 같고 전도사님 같았습니다. 형식적으로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따뜻하게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내도 ‘여기 집사님들은 진짜 집사님 같아. 여기가 진짜 교회 같아’라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이전엔 교회 봉사가 전부라 생각했고 사역은 목회자들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016년 10월부터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제자화에 대해, 복음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구원의 확신과 함께 부르심의 확신을 받았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의 부르심 말입니다.

그 뒤 감격으로 전도를 하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위 친구들에게, 그리고 노방에서 전도하는 순간은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한 영혼을 향한 눈물과 사랑이 샘솟는 순간이었습니다. 내 영이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는 밝고 따뜻한 분위기에 교회에 잘 적응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신앙적인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전도하러 나가는 것을 언짢게 생각했고 다툼이 있었습니다. 교회 얘기만 나와도 아내는 지긋지긋해 했습니다.

아내와의 불화로 낙심했습니다. 밖에서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가정이 평화롭지 못하니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한번은 아내와 심하게 다툰 후 서로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아내와 화해하려고 다가섰지만, 여전히 마음이 굳어있었습니다. 제 마음도 아내 마음도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희망은 하나도 없어 보였습니다. ‘이대로 우리 사이를 끝내야 하나.’ 아내가 너무 미웠고 나만 피해자가 된 것 같은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박영 목사님이 아내를 데리고 셀그룹 제자양육 교재로 양육을 하라는 조언을 하셨습니다. 저는 지난 2월 곧장 아내에게 달려가서 양육을 시도했습니다. 역시나 아내는 펄쩍 뛰었습니다. “뭐 하는 거냐”며 불같은 화를 내며 돌아누웠지만, 사정을 해서 결국 아내와 1과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사야서의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라는 구절을 읽다가 그만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아내도 울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내와 저는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울고 화해했습니다.

셀 제자양육은 신학을 공부하지도 않은 제가 체계적이고 간결하게 복음을 선포하고 빛을 받을 수 있는 통로가 됐습니다. 교회 예배 때만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셀 제자양육을 하러 가는 모든 곳이 은혜를 누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곳이 됐습니다.

셀그룹 제자양육을 통해 우리 가정에 빛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의 마음에도 서서히 빛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 저희 가정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집에선 제자양육 교재를 놓고 가정예배를 드립니다. 매주 커피숍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양육하고 서로 간증과 복음에 대해 질문과 답을 주고받습니다. 때론 토론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아직 완성형의 가정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 감사한 것은 좋은 교회를 만나 셀 제자양육을 하면서 가정이 구원받았고 부부의 참된 행복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제 셀 제자양육을 통해 제 가정이 회복되고 구원받은 것처럼 상처와 아픔으로 깨져가는 이 땅의 많은 가정이 하나님을 만나 살아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가정을 살리는 셀그룹 양육자가 되고 싶습니다.

조동진 집사

소년 제자양육의 기쁨, 메달 딸 때보다 더 황홀

저는 수구 국가대표로 활동하는 운동선수입니다. 예수마을셀교회에 다니는 선배의 강권에 못 이겨 지난해 10월 교회에 오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분위기가 너무 어색했지만 매주 올 때마다 따뜻하게 반겨주시고 계산하지 않고 섬겨주시는 형들의 모습에 마음이 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교회 전도사님이 식사하자고 저를 부르더니 일주일에 한 번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알아가자고 했습니다. 남자끼리 만남을 가지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어색하기도 해서 연락을 계속 거절하고 찾아올 때마다 어떻게 해서든 만남을 피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찾아와 사랑의 섬김을 보여주셔서 미안함에 양육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큰 은혜가 부어졌고 지금은 매일 매일 예수님의 사랑을 누구와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인생의 전환점은 셀 제자양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운동선수로 뛰고 있지만, 사람들과 관계에선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입니다. 하지만 제자양육을 받을 때마다 이 사랑을 누구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열망이 샘솟았습니다. 제가 청소년 시절에 방황의 시간을 많이 보냈기에 청소년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요즘은 새벽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복음을 전해줘야 할지 알려주십니다. 학교를 찾아가 학생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고 제 진심을 전할 때 청소년 아이들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셀 제자양육을 시작하는데 이 아이들이 다른 친구들을 데려오고 양육할 때마다 친구들을 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양육을 해야 할지 목사님께 코치를 받고 그대로 순종하고 진행했더니 아이들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메달을 따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황홀한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번 모임이 끝나면 “와, 주님. 너무 신기합니다”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요즘 주시는 은혜는 하루에 꼭 2명 이상, 일주일에 10명을 목표로 제자양육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다가 복음이 필요한 사람이 생각이 나면 전국 방방곡곡으로 다니며 양육을 진행합니다.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많은 곳을 다니지 못하지만, 생활권 안에서 씨를 뿌려 놓은 사람들에게는 매주 놓치지 않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상황만 끝나면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제자양육을 하며 복음을 전할 사람들의 리스트를 기록해 놓고 제자 삼을 그 날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옥에 갈 수밖에 없던 인생을 생명을 살리는 제자의 삶으로 불러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 은혜를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셀 제자양육 교재를 들고 매일매일 한 영혼을 찾아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제자 삼으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이 땅에서 내 삶이 끝나는 그 날까지 주를 위해 살고 주를 위해 죽는 제자로 살아가겠습니다.

송건 청년 (수구 국가대표) 

‘안티 크리스천’에서 이젠 제자양육 보람에 푹 빠져

저는 불신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무신론자로 살며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비판하며 살아왔습니다. 항상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저는 특히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을 더 핍박하고 무시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행위로, 시간 낭비라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일하던 치과에 저보다 경력과 나이가 많은 한 여직원이 치위생사로 들어왔습니다. 밝은 인상에 경력과 상관없이 궂은일은 도맡아 하는 직원이었습니다. 환자를 진심으로 돌보고 모든 일에 겸손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곧 그 직원과 친하게 지내게 됐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는데 처음으로 기독교인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2015년 그 직원의 인도로 수원 예수마을셀교회에서 운영 중인 전도초청 소그룹인 오픈셀에 초대받았습니다. 너무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며 교제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몇 번을 더 참석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교회로 오게 됐습니다.

처음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던 날은 잊을 수 없습니다. 처음 듣는 찬양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가사가 마음에 남아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몰랐지만, 찬양을 통해 그 마음이 저에게 분명하게 전해져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해 열린 제28차 행복치유 수양회에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던 예비 신랑도 함께 참석해 하나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가정은 감격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한동안 은혜가 가득했지만, 출산과 육아로 저의 영은 점점 메말라 갔습니다. 두 자녀를 키우며 겪게 된 육아의 어려움은 남편과 반복적인 갈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지친 몸으로 건강의 위기까지 생겼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자녀를 키우고 싶었지만 제 안에는 하나님의 확실한 말씀도, 이겨내 나갈 수 있는 영적인 힘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셀리더를 통해 제자훈련을 받게 됐습니다. 먼저 훈련을 받은 남편이 자녀를 돌봐줘서 마음 편하게 제자훈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의 분량을 채워야 하는 삶이 쉽지 않았습니다. 훈련을 받는 매시간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고 십자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저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놀랍고 커서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아기 엄마들을 전도하기 시작했고 셀 제자양육을 했습니다.

셀 제자양육 교재는 저같이 성경의 기초지식이 없던 사람도 전할 수 있도록 복음의 핵심 내용이 쉽게 잘 정리돼 있습니다. 그래서 교재를 갖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지금은 제가 전도한 아기 엄마는 물론 그들의 남편까지도 제자훈련을 받으며 함께 믿음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불신자 집안이었던 저희 가문도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제자양육을 하던 친언니가 나눔을 하던 중 갑자기 눈물을 쏟으며 ‘내가 죄 사함 받았다는 사실이 믿어진다’고 고백했습니다. 지금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겐 셀 제자양육을 하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매주 10명 이상에게 제자양육 하는 것이 기도제목입니다. 교회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저 같은 사람이 영혼을 살리고 제자 삼는 비전을 갖게 됐습니다. 그 비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어소정 집사 

체성 혼란 겪던 외교관의 딸, 하나님의 자녀로 탈바꿈

제가 태어난 곳은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공화국입니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여러 대륙을 옮겨 다니며 살았고,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아프리카였습니다. 여러 나라에 거주하며 문화와 언어를 익힐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정체성의 혼란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나의 고향은 어디일까. 내 진짜 나라는 어디일까. 나는 또 어디로 가게 될까.’ 동네를 옮기는 수준이 아니라 이 나라 저 나라를 옮겨 다녔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깊은 관계를 만드는 것도 너무 힘들고 외로운 싸움이었습니다. 어느 곳에도 쉽게 마음을 두지 못했습니다.

엄마와 저는 처음으로 교회라는 곳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15살이던 2012년 세네갈에서 처음으로 교회에 출석했는데 예수님과 만남보다는 사람들과 교제 때문에 다녔습니다.

세네갈 현지 고등학교 졸업 후 성균관대 생명과학과에 진학하면서 한국으로 오게 됐습니다. 학교 축제 때 노방 전도를 하던 교회 청년들을 통해 예수마을셀교회와 만남이 시작됐습니다.

그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저는 고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항상 내면이 불안했습니다. 정체성 갈등으로 내 인생은 어디로 가는 걸까 질문해 왔습니다. 한국에서 신앙생활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언니들의 따뜻한 격려와 사랑을 통해 점차 예수님의 사랑을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7년 33차 행복치유수양회를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내 인생의 시작이 어디였는지, 내가 돌아갈 곳이 어디인지 알게 된 것이 너무 흥분됐습니다. 셀그룹 제자양육 기초용 1과 제목처럼,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게 됐습니다. 돌아갈 곳이 없다고 항상 생각했는데 내가 돌아갈 곳은 천국이며 나의 진짜 정체성은 하나님의 천국 백성임을 알게 됐습니다.

이 감격스러운 만남을 통해 정체성이 회복되자 저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저와 같이 인생의 길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 삶을 드리겠다고 하나님께 다짐했습니다.

저는 한국 학생뿐 아니라 한국에서 유학 중인 외국인들과 제자양육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온 자매와 일본에서 온 자매, 학교 후배들을 제자양육하고 있습니다. 이들과 양육하며 깨닫는 너무 놀라운 비밀은 복음의 능력, 십자가 사랑은 나라와 인종을 넘어서고 문화와 관습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 신천지에 빠져 깊은 상처로 영적인 방황을 하는 학생을 만났는데 꾸준히 제자양육을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우울증으로 작은 문제만 생겨도 연락을 차단하며 관계를 맺지 못하는 한 학생은 예전의 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제가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줬습니다. 그때 눈빛이 달라지고 삶이 변화되는 것도 보게 됐습니다.

그들과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며 제가 배운 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만 해줬는데 한 영혼이 살아나는 것을 보고 이것이 왕 같은 제사장의 삶이구나 경험하게 되니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릅니다. ‘정말 복음은 살아있구나. 정말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구나.’ 매일 깨닫고 있습니다.

이 행복하고 황홀한 삶을 나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제자 양육하는 모든 사람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축복의 통로로 힘써 달려가겠습니다.

강예지 청년 

‘돈’ 좇으며 허황된 인생 살다 이젠 생명의 전달자로

저는 모태신앙이었지만, 부모님이 시켜서 교회에 출석만 할 뿐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돈이 많아야 성공한 인생이다’라는 가치로 살아왔기에 취업 대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시장 조사를 충분히 했지만, 생각하지도 못했던 문제가 발생해 어렵게 모았던 2000만원을 모두 날렸습니다. 사업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왜 하필 나일까.’ 부정적인 생각이 끝없이 맴돌았습니다. 항상 삶에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조언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업이 실패하자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자존심이 너무 상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 속에서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했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아 살 수도 없고 죽을 용기도 없는, 목적 없는 인생은 깊은 공허와 절망만 남았습니다. 술과 담배에 빠졌고 알코올과 도박은 중독상황까지 갔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인생의 깊은 절망과 위기는 하나님의 위대한 기회임을 돌아보게 됩니다. 희망 없이 살아가던 중 예수마을셀교회에 다니는 지인을 통해 지난해 5월 한 형제를 소개를 받고 셀그룹 제자양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1과씩 진행을 하면서 십자가 사랑이 마음에 들어오자 삶의 희망이 생겨났습니다. 나의 인생이 여기에서 끝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나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었고 제 인생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아름답게 사용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제자훈련까지 받아 열심히 믿음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미디어 사역을 통한 복음 전파에 비전을 주셔서 미디어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더 확장 시켜 나갈 방법과 전략을 매일 기도하며 연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불신자와 함께 셀그룹 제자양육을 하다가 제 인생에 너무 큰 의미가 남는 고백을 듣게 됐습니다. 양육 후 나눔 시간에 오늘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질문했는데 그 친구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는 이제 예수님을 믿음으로 천국 가는 인생이 되었다는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제 인생 이제 그것 하나로 충분하고 감사합니다.” 그 고백을 듣고 몇 날 며칠을 울며 회개와 감사의 찬양으로 보냈습니다.

돌아보니 아직도 나는 100% 예수로 만족하는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고 사용해 주심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매주 7~8명의 불신자를 양육합니다. 더 많은 사람을 양육하기 위해 새벽마다 기도하며 전략을 짭니다. 선물을 갖고 심방을 하며, 쉴 틈 없이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제자양육을 하면 할수록 제 능력의 한계를 경험하고 있어서 새벽마다 이 기도만 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저를 사용해 주세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전도도 어렵고 예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셀그룹 제자양육이 너무나 필요함을 많이 느낍니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에 이미 관계가 있던 친구들, 예전 사업 동료, 가족을 중심으로 제자양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별다른 희망과 소망이 없던, 절망의 33년 인생을 살려 주셨습니다. 저 역시 누군가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습니다.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생명의 전달자가 되겠습니다.

김준용 청년 

의료진도 포기한 남편 기적 회생… 충성스런 제자로 사명 감당

저는 어릴 때 할머니를 따라 교회에 갔습니다. 늘 머리에 손을 올리고 기도해주신 할머니의 믿음의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예수 믿는 것을 당연하게만 여겼습니다.

2005년 대학 졸업 후 간호사로 취업하면서 근무 여건상 주일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하나님도 삶에서 잊혀 갔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 있습니다. 삶이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고 인간관계, 건강, 재정의 광야를 지나게 됐습니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외로움이 컸습니다. 2009년 그렇게 방황할 때 친한 친구가 예수마을셀교회로 인도했습니다.

당시 강퍅한 마음에 교회 식구들을 피해 도망 다니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변함없는 관심과 사랑에 저의 마음이 조금씩 열렸고 그해 열린 제16차 행복치유 수양회에 참석했습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욕하며 살았는데, 주님이 나를 모른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지만, 예수님은 오래도록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니 외롭고 아프고 상처만 줬던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자양육 과정에서 내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삶의 방향과 목적이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훈련받으며 배운 대로 했을 뿐인데 영혼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감격이 거듭될수록 어려웠던 인간관계가 풀어지고, 갑상선기능항진증이 완치됐으며 물질의 축복이 있었습니다. 특히 믿음의 가정을 이루는 축복까지 주셨습니다.

2013년 결혼 후 두 자녀가 태어나면서 가정에 안주하며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변해가는 저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지난해 12월 예기치 않는 사건을 하나 주셨습니다.

남편이 단순한 몸살감기인 줄 알고 병원을 찾았는데,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로 갔습니다. 간농양이 급성패혈증으로 악화됐고 균은 신장과 폐를 망가뜨려 인공호흡기의 마지막 단계인 에크모(ECMO, 체외막산소화장치)까지 달았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타들어 가는, 어찌할 수 없는 가슴을 움켜쥐고 날마다 밤새우며 부르짖었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더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나 살기에 급급하고 허덕였던 모습에 회개가 터져나왔습니다.

하나님은 깊은 평안함과 은혜로, 요동치는 제 마음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상황은 변함이 없었지만, 하나님과 깊은 친밀함과 사랑에 매일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사랑이 너무 커서 중환자실 앞에서 면회를 기다리는 보호자에게 예수를 전했습니다.

그중 다섯 살 아들이 뇌종양에 걸려 중환자실에 있는 엄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24시간 중환자실 앞에 앉아 바라만 보던 아기 엄마와 함께 제자양육 교재로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며 펑펑 울었습니다.

남편은 의료진이 포기한 상황이었습니다. 3개월간 무의식 상태로 에크모에 의존하며 생명을 이어가던 중 기적적으로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중환자실의 기나긴 싸움에서 결국 승리를 주셨습니다.

남편에게 일어난 기적은 많은 분에게 희망의 증거가 됐습니다. 아주대병원 의료진에게도 하나님의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명자의 가정으로 남편과 저를 사용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고 기꺼이 순종하게 됐습니다.

사도행전 20장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려 합니다. ‘가서 제자 삼으라’는 주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제자가 되겠습니다.

김지혜 집사 

삶의 공허함 신앙으로 채우고 하나님의 제자로

저의 어린 시절은 깊은 어둠 그 자체였습니다. 부모님은 항상 다툼과 불화가 가득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아버지도 연달아 같은 선택을 했는데 시신을 직접 수습해야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엔 너무 절망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처참히 무너진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2011년 성균관대 화학공학과에 진학했습니다.

대학 입학 후에도 더 좋은 미래를 위해 학업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말할 수 없는 공허함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해서 잘되고는 있는데 내가 왜 살지. 나도 부모님처럼 갑자기 극단적 선택을 하는 거 아냐. 그냥 자다가 자연스럽게 죽었으면 좋겠다.’ 공허함 뒤에 찾아오는 삶의 본질적 질문이 반복됐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인생인지 모르는 인생이었기에 고장 난 나침반처럼 방향 없이 살아갔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의 소개로 2016년 성균관대 ‘해피브릿지’ 모임에 가게 됐습니다. 그 모임에는 그동안 살면서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함이 있었습니다. 별로 뛰어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사람들이 뭐가 그리 행복해 보이는지, 여유도 넘치고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았습니다. 가끔 모임에 참석하며 그들이 믿는 예수님에 대해 알아갔고, 예수마을셀교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해 열린 제31차 행복치유수양회에 참석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주님은 어린 시절부터 쌓여온 모든 상처를 만지고 치유해주셨습니다.

제자양육을 받으면서 저의 존재 목적을 알게 됐고 상처로 어그러진 성품들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훈련을 받으며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로 삼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니 좋은 직장도 주셨습니다.

치열한 직장생활 중 여러 사람을 만나 복음을 전하고, 노방전도 등을 하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영혼의 열매가 없었습니다. 전도현장에서 종종 한계에 부딪히며 제자 삼는 것이 내겐 너무 어려운 것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렇게 막혀서 답답하던 때에 목사님께서 ‘셀그룹 제자양육’ 책으로 한 영혼에 다가가서 그저 함께 읽고 나누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책으로 나눈다고 전도가 될까’ ‘제자를 삼을 수 있을까’ 의심했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더니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지난해 초에 양육했던 새가족은 저보다 훨씬 많은 불신 영혼들에게 제자 양육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의 든든한 제자로 세워져 차기 리더십으로 준비되고 있습니다.

올해 초에는 복잡한 논리와 철학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려 했던 새가족 역시 양육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됐고 주일예배와 셀 모임(셀예배)을 함께 드리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제자양육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제자 삼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준비된 예비 제자들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저는 선친이 연탄가스로 저와 동반자살을 시도할 때의 후유증으로 뇌에 손상이 생겨 간질(뇌전증)을 앓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엔 심한 발작으로 수치심과 자존심이 상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네 은혜가 내게 족하도다”고 응답받았던 바울처럼 모든 것이 은혜임을 깨닫고 포기하지 않고 한 영혼을 향해 이 길을 달려가고 있습니다.

저처럼 더럽고 추악한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 예수님이 어떤 고통을 당하셨는지, 그것을 알기에 이 길을 절대 멈출 수가 없습니다. 어떤 고통과 어려움이 와도 기쁨으로, 눈물로 영혼 구원과 제자 삼기 위해 달려가겠습니다. 주여, 내 삶을 받아주소서.

박윤석 청년 

세상 가치 좇던 여행중독자, 말씀 심으니 복음중독자 되다

저는 한마디로 여행중독자였습니다. 사이비종교를 믿는 엄마와 아빠의 갈등으로 어렸을 때부터 집을 벗어나는 것만이 제게 자유와 행복이 주어지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11년 대학 졸업 후 바로 사진을 전공한 친구들과 함께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아무에게도 구속받지 않은 채 일하고 돈 벌고 여행하고 자유롭게 만족스러운 생활을 했습니다.

오로지 여행을 하기 위해 돈을 모으고 언어를 배웠습니다. 비자까지 모두 해결해 주겠다는 남자를 만나 안정적인 외국 생활을 꿈꾸며 어렸을 때의 상처와 답답함을 보상받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늘 마음은 공허했습니다. 세상 문화로 잠깐의 행복을 누렸지만, 돌아서면 초라한 빈 껍데기의 제 모습에 절망했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인생을 반복하며 살았습니다.

저는 어떤 종교를 믿던 ‘모든 종교의 끝은 결국 똑같아. 나만 좋으면 되지’라 생각하고 종교라는 것에 얽매이지 말아야지 하며 살았습니다. 4년간 한국 호주 필리핀 미국 캐나다 등 여러 나라를 다니며 여권에 도장 마를 날 없이 여행을 다녔습니다. 긴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필리핀에서 만났던 룸메이트를 통해 예수마을셀교회를 소개를 받았습니다.

스스로 자유인이라 여기며 자유분방하게 살아왔지만, 제가 느끼는 자유와 예수마을셀교회 사람들이 누리는 자유는 달라 보였습니다. ‘이들도 분명 세상에서 치열하게 살 건데 왜 이렇게 얼굴이 평온해 보이는 걸까.’ 이 교회에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들이 믿는 하나님을 알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2016년 제31차 행복치유수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여행 중에 경험한 수많은 사건은 제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하나님의 노크였고, 하나님의 사랑이 끝까지 저를 기다리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또한, 여행은 자유를 향한 갈망이 아니라 끊임없는 도피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화목하지 않고 갈등만 가득한 가정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처절한 몸부림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제자훈련을 받으며 세상 가치에서 하나님 나라 가치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불신자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자녀를 양육하며 어려움을 만날 때도 도피하지 않고 극복해낼 수 있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셀리더 언니를 통해 셀 제자양육을 받게 됐는데 제가 받은 이 사랑을 누군가에게 꼭 전해야겠다는 감동이 들었습니다. 기도하며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주변 사람들의 리스트를 만들고 한 사람씩 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용기 내어 직장 동료와 제자양육을 시작했고 자주 찾아가던 식당 사장님도 양육했습니다. 바쁜 직장 생활과 육아 중에도 시간을 내어 서울에 있는 친구들을 찾아가 셀 제자양육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세요.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기다리시는 분이세요.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 저를 포기하지 않으세요.”

하나님을 멀리하며 방황하던 저를 끝까지 기다리셨던 그 사랑을 고백할 때면 너무 감사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양육 대상자들의 마음이 변하는 걸 보면 복음 안에 능력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셀그룹 제자양육이라는 무기가 있으니 더 자신감이 생깁니다. 저는 이제 여행중독이 아니라 복음중독, 예수중독, 셀 제자양육 중독자가 돼가고 있습니다. 저와 같이 참 평안과 기쁨을 모르고 세상 문화 속에 빠진 사람들을 찾아가 십자가 사랑을 전하겠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의 삶을 생명 다해 살아내겠습니다.

박민주 성도

“물불 가리지 않고 인생 끝자락에서 만난 하나님 전해요”

저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과 정반대의 삶을 살았습니다. 친구들이 저를 ‘사회악과 같은 존재’라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14살부터 담배를 피우고 술집을 전전했습니다. 거침없는 성격으로 친구, 선배, 후배들의 인기를 얻자 조직폭력배 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세상의 왕이 된 듯한 착각 속에 살았습니다.

돈맛에 눈을 뜨면서 보험영업과 건설업을 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정신없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술, 담배, 여자, 유흥, 도박, 골프, 주식 등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남은 것은 없고 빚만 쌓여 있었습니다.

그제야 방황의 질주를 멈추고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 앞에서 ‘인생 잘못 살았구나’ 깨닫게 됐습니다. 15년간 누린 세상의 온갖 쾌락은 이젠 인생의 무거운 짐이 돼 저를 자살의 자리로 몰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사촌 형의 인도로 2014년 2월 예수마을셀교회에 나오게 됐습니다.

교회에 온 첫날 ‘당신의 모습이 어떠할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담임목사님의 메시지 앞에 통곡했습니다. 울고 또 울었습니다. 한 달 후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수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저는 어차피 자살하기로 마음먹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어차피 저는 자살해서 죽을 인생인데 당신이 계신다면 저를 만나주십시오. 안 그러면 저는 진짜 죽습니다.’

그렇게 참석한 제26차 행복치유수양회에서 돌아온 탕자의 상처를 싸매주시고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뜨겁게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저질러온 온갖 죄악과 죄악들을 회개하며 주님이 진정한 주인임을 고백했습니다.

이후 저의 삶은 변화됐습니다. 아니 다시 태어났습니다. 정말 세상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고 가슴이 터질 듯한 감격이 매일 매일 밀려왔습니다. 제자양육을 통해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하며 영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셀그룹을 통한 제자화’라는 비전이 날마다 저의 심장을 미칠 듯이 뛰게 했고 한 영혼에게 나아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성령의 불이 임했습니다.

담임목사님이 만든 ‘셀그룹 제자양육’이라는 책을 들고 영혼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많은 거절과 핍박, 아픔, 연락 두절이 있었지만,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전진했습니다. 양육 대상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밥과 선물을 사주면서 관계를 맺었는데 그것을 이용하고 떠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생각하면 멈출 수 없었습니다. 나를 위해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양육하러 매일 나아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불신자, 장기결석자, 타 종교인, 교회를 다니다가 실족한 사람을 만나 양육하면서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부정적 반응을 보이지만, 7과까지 진행하면 자연스럽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교회까지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매주 10명 이상의 불신 영혼을 양육했고 셀 제자양육을 통해 올 한 해 셀에서 2명의 리더와 5명의 예비리더가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의 지상대명령인 ‘가서 제자 삼으라’는 말씀처럼 제가 양육한 양육대상자들도 또 다른 제자를 찾아 제자 삼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는 제자 삼는 자에게는 인생에 진정한 황홀함이 있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그 황홀함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됐습니다. 한 번뿐인 인생, 다시 살게 하신 주님의 사랑에 매여 목숨 아끼지 않고 오직 복음을 위해 드릴 것입니다.

남건영 청년 

하나님 인격적으로 만나 변화… 불교 신자였던 지인의 회심 도와

저는 아주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는 불신자였고 어머니는 교회 집사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다녔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단지 친구와 친한 형들이 있는 놀이터일 뿐이었습니다. 대학 진학 후 제 신앙의 바닥은 자연스럽게 드러났습니다.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벌을 받거나 사고를 당할 것 같아 ‘보험’ 성격으로 출석만 했습니다. 이곳저곳 분위기 좋은 교회를 찾아다니며 이벤트가 있거나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떠돌아다니는 ‘메뚜기’ 성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성도들을 보면 ‘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저렇게 열심히 봉사할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적인 치유를 받거나 돌아온 탕자 같은 삶을 경험한 사람의 간증을 들으면 ‘나는 왜 저런 반전이 없지’라며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막상 교회를 섬길 기회가 오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피했습니다.

그렇게 이중적인 종교 생활을 하다가 2013년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를 통해 예수마을셀교회에 오게 됐습니다. 교회 성도들의 따뜻한 섬김과 권면으로 2014년 제25차 행복치유수양회에 참석했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그때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더이상 평범한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신 특별한 인생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율법적으로 징계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 같은 추악한 죄인을 끝까지 인내하시며 사랑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님, 그분의 ‘크레이지 러브’(미친 사랑)가 제 삶을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제자훈련을 받으며 복음의 열정이 솟아났지만, 전도에는 항상 한계가 있었습니다. 직장 동료에게 복음을 전하고 친구 가족에게 복음을 전해도 실제적인 열매가 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한계에 다다를 즈음,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습니다. 노방 전도와 교회의 모든 행사가 멈췄습니다. 하지만 박영 담임목사님은 ‘이것이 오히려 제자를 삼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권면대로 실제적인 열매를 맺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셀 제자양육을 받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양육을 하는 자가 가장 큰 감격 있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양육 대상자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기도를 작정해 리스트를 적어가며 기도했습니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지인을 찾아갔고 용기를 내서 셀 제자양육을 했습니다. 그렇게 매주 양육을 하면서 오히려 제가 하나님의 사랑의 감격을 맛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그동안 목사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제자양육의 기쁨이구나.’ 깊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양육대상자가 7주간의 기초 과정을 마치고 교회 예배까지 출석하는 기쁨을 맛봤습니다.

셀 제자양육 기간 중 아내의 둘째 아이 유산과 여러 좋지 않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자양육을 하며 나같이 평범한 사람도 특별하게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기에 매주 눈물로 기도하며 진행했습니다.

저의 변화되는 모습에 아내도 감동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인생의 주인 자리에서 내려오니 자연스럽게 주변의 많은 갈등이 사라졌습니다. 점점 믿음의 가정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님께서 아무런 목표도 없이 살던 인생에게 제자 삼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치열한 직장 생활 중에도 매주 10명을 양육해야겠다고 다짐하니 뜻하지 않는 곳에서 양육 대상자를 발견합니다. 지금도 셀 제자양육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영적으로 마지막 시대라고 말합니다. 저는 주님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며 수많은 제자를 세우고 싶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주님을 다시 만날 때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고 금 면류관 받는 영광스러운 제자가 되겠습니다.

주민철 집사

“안된다 생각하면 핑계가 보이고 된다 생각하면 길이 보인다”

저는 불신자 아버지와 어렵게 신앙생활을 하신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평소 행복해 보였지만,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오는 날은 집안이 시끄러웠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말이 없고 소심한 성격이었습니다. 부모님의 다툼이 있는 날은 감정을 숨기고 방 안에서 소리 없이 울며 기도했습니다.

평범한 대학 생활을 마치고 변화를 꿈꾸던 차에 학교 동아리 선배를 만났습니다. 선배의 권유로 고향을 벗어나 2006년 수원 예수마을셀교회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예수마을셀교회는 당시 개척 교회였습니다. 매주 선포하시는 목사님의 비전에 감동이 돼 정착했습니다. 교회에 발을 들여놓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낮은 자존감 때문에 수년간 뒤에 숨어 리더들의 사역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가끔은 전도도 하고 기도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역 현장에 뛰어들어 일하는 것은 내키지 않았습니다. 청년 시절엔 이런 문제 때문에 안된다, 결혼 후엔 저런 문제 때문에 안된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아이 때문에 안된다며 여러 핑계를 댔습니다.

저는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입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출근하면 온종일 개인 시간 없이 일하다가 퇴근 후에는 집안일을 합니다. 아이를 재운 뒤 밤 10시가 돼야 개인 시간을 갖습니다.

박영 목사님은 강단에서 “셀 제자양육을 하면 양육자인 내가 먼저 은혜를 받는다”라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워킹맘의 바쁜 일상을 핑계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9월 금요성령집회 때 직장을 다니면서 매주 10명씩 제자양육을 하는 한 성도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견딜 수 없는 은혜가 부어졌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고통받는 이 코로나 시대에 ‘셀그룹 제자양육이 답이다’는 분명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더 이상 핑계 대는 인생이 아니라 시대를 이겨내는 신앙인이 되자’고 결단했습니다.

저는 수원의 한 대형 유치원에서 교사로 15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생각이 바뀌자 수많은 아이와 교사가 모두 제자양육의 대상자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직장 환경상 퇴근 이후에만 시간이 됩니다. 워킹맘들은 일이 끝나면 가정으로 바로 돌아갑니다. 제자양육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가 거절도 많이 당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며 믿음으로 도전하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매일 2명씩 제자 양육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도전했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했더니 한 주에 7명과 함께 제자양육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중 한 양육 대상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불신자에게 이 기쁜 복음의 소식을 빨리 전해주고 싶다고 고백했습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을 양육하고 있습니다.

이후 저는 양육 대상자를 매주 집으로 초청해 셀 제자양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최근 제자양육을 하는 선생님과 함께 직장에서 감격스러운 첫 직장 예배를 드렸습니다.

안된다고 생각하면 핑계가 보이고, 된다고 생각하면 길이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매일 새벽 누구를 만나 양육을 할지, 어떻게 섬기며 양육을 시도해야 할지 기도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하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제자양육을 할 때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엄청난 기쁨과 감격이 있습니다. ‘너희는 가서 제자 삼으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을 뿐인데 저의 제자가 또 다른 제자를 세우고 있습니다. 한 번도 예수님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불신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면서 희열을 느낍니다. 셀 제자양육이야말로 우리 주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임을 확신합니다.

손지희 집사 

‘상처 덩어리’가 예수님 만나니 제자양육하는 비전의 사람으로

저는 전남의 시골 마을에서 삼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농사를 짓던 아버지는 술을 드시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폭력을 휘두르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사랑하셨지만, 어머니와 형제들이 폭행당할 땐 제 마음속에 분노가 자라났습니다.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거친 말을 하며 자신을 포장했습니다. 집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광주로 대학을 갔고, 졸업 후 더 멀리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 2003년 경기도 광명으로 올라왔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며 남자친구를 만났는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보건직 공무원 시험에서 낙방한 것입니다. 남자친구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자마자 제게 이별을 통보했습니다.

배신과 좌절로 어렸을 때부터 담고 있던 분노와 상처들이 표출됐고 제 삶은 망가져 갔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던 고향 친구를 통해 2010년 예수마을셀교회에 오게 됐습니다.

위기는 기회가 됐습니다. 그 해 있었던 제18차 행복치유수양회를 통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늘 용서하지 못했던 아버지와 과거의 남자친구를 용서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사랑은 제 상처와 분노를 덮고도 남을 만큼 크고 깊었습니다. 이후 제자훈련을 받으며 제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저는 성격이 ‘직진형’입니다. 하나님과의 강력한 만남 이후 어디를 가든지 예수님을 자랑하게 됐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과 가치가 내 인생에 채워지자 다른 어떤 것으로도 내 인생을 허비하기 싫었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 ‘셀그룹 제자양육’으로 삶의 현장에서 제자 삼으라고 하셨을 때 가슴이 설레고 흥분됐습니다. 전에는 병원에서 직원과 환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친구에게 복음을 전해도 교회까지 인도하는 것에만 그쳤습니다. 이제는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제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다면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복음을 전하고 열매가 맺히면, 영혼을 전도하기 위해 다른 병원으로 이직을 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항상 최고의 실력을 갖춘다는 자세로 준비하고 직원을 섬깁니다.

지금 근무하는 병원에서도 직원과 환자뿐 아니라 건물 관리소장님, 건물 미화원 이모님에게까지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에 틈나는 대로 제자양육을 합니다.

거절과 무시, 교회를 향한 비아냥거림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열매를 보면 이 발걸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불신자였던 직원이 변화돼 지금은 교회 리더가 됐습니다. 그 남편도 변화되고 가정도 변화됐습니다. 이런 현장을 경험하면 천국의 기쁨을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믿음이 약한 기존 신자에게도 도전이 돼 직장에서 예배를 드리고 제자양육을 합니다. 가장 큰 기적은 완강하시던 아버지와 가족에게도 제자양육을 하는 것입니다. 온 가족이 예수님을 영접해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기도하던 중 하나님은 제게 ‘1000명의 영혼을 제자 삼으라’는 제자양육의 비전을 주셨습니다. 밭에 감춰진 보화 예화를 생각하면 항상 가슴이 뜁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려 했던 평범한 인생인데 천국 보화를 발견하고 그 밭을 사서 수지맞은 인생이 됐기 때문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이 말씀을 제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주를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조옥희 청년 

살 빼려 시작한 운동으로 ‘국대’까지… 지금은 제자양육 대표선수

어린 시절 고도비만이었던 저는 살을 빼기 위해 수영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운동의 길에 들어섰고 국가대표선수가 되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국가대표로 국제경기에 출전해 메달을 따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치열한 훈련을 이겨내고 20세에 국가대표가 됐습니다.

훈련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늘어가는 실력에 기쁨과 보람이 컸습니다. 경기력이 향상되자 자신감이 생겼고 만족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2016년 당시 국가대표 수구팀 주장 선배를 통해 예수마을셀교회를 소개받았습니다. 교회에 가기 싫었지만, 평소 훈련을 열심히 도와주며 좋은 모델이 된 선배였기에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항상 반겨주시는 교회 집사님들이 있어 교회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고 좋았습니다. 자연스럽게 그해 제31차 행복치유수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곳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그동안 세웠던 모든 삶의 계획이 잘못임을 깨닫고 인생의 방향을 바꾸기로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삶의 현장에서 변화는 쉽지 않았습니다. 예배 때는 은혜를 누렸지만, 막상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면 불신자들과 똑같이 술과 담배를 즐겼습니다. 다시 교회에 오면 죄책감으로 자유롭지 못한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2019년 어느 날, 제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평소 친형처럼 가깝게 지내던 한 선배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입니다. ‘내가 한 번만이라도 예수님의 사랑을 전했으면, 한 번만이라도 복음을 전했으면 이런 일은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엄청난 십자가 사랑을 나 혼자만 누리던 이기적인 모습을 회개했습니다. 더이상 내 주변에 이런 슬픈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박영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셀 제자양육’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부터 모든 선수촌에 제자를 세워야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제자양육을 시작했는데 서툰 전달 방식으로 거절을 여러 번 당했습니다. 하지만 성령 하나님께 의지했더니 점점 저의 진심이 전해졌습니다.

많은 불신자 친구와 선수가 저를 통해 주님을 만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매주 10명을 목표로 양육을 진행했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 40여명의 영혼을 주님 앞에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제자양육의 놀라운 축복은 저를 통해 제자로 세워진 자가 또 다른 제자를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 제자가 또 다른 제자를 세워 1년 만에 4대에 걸친 제자가 세워졌습니다.

이렇게 셀 제자양육을 통해 세워진 제자가 지금은 80여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들도 저와 똑같이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며 제자를 세우고 있습니다.

제자를 양육하며 느낀 것은 내가 먼저 성장하고 변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를 양육하기 위해서는 대상자를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고 말씀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운동도 더 모범적으로 해야 했기에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 연습했습니다. 제자양육을 할 때는 시상식에 오르는 그 순간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이 찾아옵니다.

한 생명이 살아나는 기쁨은 금메달 획득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저의 갈급함보다 더 갈급하게 영혼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눈물을 매일 새벽마다 느낍니다. 그래서 부르짖어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의 모든 스포츠 선수가 하나님을 만나는 그 순간까지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겠습니다.

김동혁 청년